오늘의 묵상

16-07-20 04:49

거룩한 사랑의 낭비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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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 12:1~8 John 12:1~8
1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1Six days before the Passover, Jesus arrived at Bethany, where Lazarus lived, whom Jesus had raised from the dead.
2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2Here a dinner was given in Jesus' honor. Martha served, while Lazarus was among those reclining at the table with him.
3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3Then Mary took about a pint of pure nard, an expensive perfume; she poured it on Jesus' feet and wiped his feet with her hair. And the house was filled with the fragrance of the perfume.
4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4But one of his disciples, Judas Iscariot, who was later to betray him, objected,
5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5"Why wasn't this perfume sold and the money given to the poor? It was worth a year's wages."
6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6He did not say this because he cared about the poor but because he was a thief; as keeper of the money bag, he used to help himself to what was put into it.
7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7'Leave her alone,' Jesus replied. 'It was intended that she should save this perfume for the day of my burial.
8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8You will always have the poor among you, but you will not always have me.'
본문은 유월절 엿새 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베다니에서는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벌어졌고,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나사로가 잔치에 수종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리아는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일을 기념하라고 하실 정도로(막14:4) 이 사건을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준비하고 예비하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등장인물들은 십자가의 사건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먼저, 마르다는 일을 했습니다. 이전에는 마리아가 도와주지 않는 것을 불평하였지만, 이제는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께 대한 기쁨과 감사로 일을 합니다. 다음으로,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남으로 온 동네의 이목이 집중된 상태였음에도, 그의 관심은 오직 예수님과 교제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에수님께 향유를 부어 드렸습니다. 주님을 섬기듯 일을 했던 마르다의 사랑이 서번트십이며, 주님과의 교제를 우선순위로 삼았던 나사로의 사랑이 펠로우십이었다면, 향유를 부어드린 마리아의 사랑은 주님을 경배하는 워십이었습니다.

주님께 납작 엎드려, 근로자 1년치의 품삯과 맞먹는 고가의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던 마리아의 행동은 자신의 체면과 비용을 고려하지 않는 비합리적이며 비계산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효욜성과 합리성이라는 세상의 가치를 뒤집는 ‘거룩한 사랑의 낭비’였습니다. 마리아는 어떻게 이러한 거룩한 사랑의 낭비를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사랑의 낭비’의 원형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에 녹아져 ‘거룩한 사랑의 낭비’에 동참했던 인물들이 참 많습니다. 자신의 평범한 삶을 포기하고 ‘로고스 호프’를 타고 선교여행을 하는 것이나, 1년에 한 명도 전도하기가 쉽지 않은 이슬람권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 뿐 아니라, 우리가 한 영혼을 품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 심지어 이렇게 화창한 주일에 교회에 모여 주님께 예배하는 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에는 낭비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거룩한 낭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며, 집필되고,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를 향해 왜 낭비하느냐고 삿대질 하는 가룟유다처럼,(4~5절) 자기 의와 자기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 또한 우리 주위에는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가끔씩 만났던 마리아도 주님께 지극한 사랑으로 헌신하였는데, 날마다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가룟유다가 예수님의 심정을 깨닫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 정의’가 없는 ‘사회적 정의’를 부르짖는 21세기판 가룟유다가 아니라, ‘세상의 정의’를 초월한 ‘하나님의 정의’가 충만하여 거룩한 사랑의 낭비를 감행할 수 있는 21세기판 마리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향한 거룩한 낭비를 할 수 있겠습니까? 오 헨리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의 스토리처럼 진짜 사랑은 자기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십자가의 사랑에 녹아짐으로 항상 밝은 얼굴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다윗에게는 물맷돌, 모세에게는 지팡이, 바울에게는 글 쓰는 은사, 실라에게는 섬기는 은사, 빌리 그레이엄에게는 설교의 은사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각자가 주님께 받은 독특한 선물이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시간, 재능, 물질을 어떻게 하면 ‘거룩한 사랑의 낭비’에 사용할까 고민하고 실천함으로, 우리 모두가 복합적 갈등구조 가운데 고통 받는 이 사회를 치유하시는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