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16-07-19 17:55

누구를 위한 슬픔이요 기도인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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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2:39~46 Luke 22:39~46
39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39Jesus went out as usual to the Mount of Olives, and his disciples followed him.
40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40On reaching the place, he said to them, 'Pray that you will not fall into temptation.'
41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1He withdrew about a stone's throw beyond them, knelt down and prayed,
42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2'Father, if you are willing, take this cup from me; yet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43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43An angel from heaven appeared to him and strengthened him.
44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44And being in anguish, he prayed more earnestly, and his sweat was like drops of blood falling to the ground.
45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5When he rose from prayer and went back to the disciples, he found them asleep, exhausted from sorrow.
46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46'Why are you sleeping?' he asked them. 'Get up and pray so that you will not fall into temptation.'

 

 예수님과 제자들을 마지막 성만찬을 마치고 찬양을 부르며 감람산 기슭의 겟세마네 동산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동산에 거의 이를 즈음이 되자 분위기는 더없이 숙연해져 갔습니다. 주님은 8제자들을 동산 입구에 머무르게 하시고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3제자만 데리고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셨는데, 그때부터 슬픔과 고통에 으스러진 주님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주님을 마태는 고민하고 슬퍼하셔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표현했고, 마가 역시 예수님이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셨다고 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슬픔과 놀람과 고민을 그의 이마에서 흘러 내린 피 섞인 땀방울을 가지고 대언했습니다.  

 

그런데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무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은 피땀을 흘리며 괴로워 하던 그날 밤, 예루살렘 도성의 모습은 얼마나 대조적이었습니까? 진작 땅을 치고 통곡해야 할 사람들은 유월절 축제분위기에 들떠 넋을 잃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마저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모순투성이 사건이 발생한 기막힌 밤이었습니다.

흔히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겪으신 이 슬픔을 일컬어서 '불가지한 슬픔'이라고 표현합니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슬픔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누가 이 슬픔을 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 우리 중에 혹 믿음이 더 깊어서 3제자들처럼 주님께 좀더 가까이 다가 앉을 수는 있을런지 모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신음소리와 울부짖음을 간간히 들을 수 있다고 해서 슬픔으로 짙이겨진 주님의 고통에 동참한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누가 세상 모든 죄를 혼자서 다 짊어져 보았나요? 누가 죄를 모르는 깨끗한 마음에 하나님의 진노를 한꺼번에 받아 보았습니까? 아무도 예수님의 고난의 잔을 나누어 마실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죄를 짊어지시기 위해 기도하신 주님을 따르기 위해 몇 가지 진리를 배워야 합니다.

첫째, 주님이 당한 슬픔과 고통은 바로 나의 슬픔과 고통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디서 이것이 진리임을 알 수 있습니까? 이사야 53장을 펴보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칠백 여년 전에 예수님이 당하여야 할 그 슬픔이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통해 예언되었습니다.
사 53 : 4에서 "그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우리"는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분명해지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던 그 슬픔은 다른 누구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그 사실 앞에 놀라며 무릎 꿇기 이전에 예수님 자신의 죄가로 돌리고 오히려 손가락질 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눈물 흘릴지라도 주님이 불쌍해서 흘리는 동정의 눈물은 그만두십시오. 진작 통곡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예수님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임을 깨닫지 못하면 나와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중요한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당신은 언제 예수님의 고난과 슬픔이 당신 자신을 대신한 것이었음을 깨달았습니까?"

또 하나는, 우리도 예수님처럼 겟세마네 동산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을 자주 찾아 가셨습니다. 그가 동산을 오를 때에는 고민하고 슬픔에 젖어 있었지만 그 동산을 나오실 때는 평안과 힘을 얻어 나오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기진맥진하여 기도가 힘을 잃어갈 때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그의 기도를 도왔습니다(43절). 천사의 도움을 얻자 예수님은 더 힘을 내어 간절히 기도했고 마침내 이마에서 피땀이 방울져 흘러 내렸습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기도했습니까?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통곡하지 않습니다. 마음에는 호수같은 고요함이 자리 잡습니다.

주님은 우리도 그와 같은 은혜를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이 지금 기대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종이 벽에 불과합니다. 젊음인가요? 얼마 지나지 않으면 시들 풀과 같습니다. 그것 가지고 험한 세상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당신의 기도의 동산에 오르십시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의 골방에 들어 가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처럼 시험에 들기 전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모든 문제 해결할 힘과 평안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무서운 슬픔과 고뇌를 안고 시름하는 중에도 그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 나온 말은 "아바, 아버지"였습니다. 이 말은 어린 아이가 사랑하는 아빠를 향해 부르는 호칭입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외면된 그때, 그가 찾아갈 곳은 사랑하는 아버지 뿐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만은 언제나 자기를 받아 주시고 위로해 주심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라면 어색함이 없습니다. 언제 찾아가도 어려움 없이 마음에 있는 것 털어 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마찬가집니다. 기도의 동산에 길이 나도록 자주 찾아 가야합니다. 한밤중에라도 찾아갈 수 있을 만큼 익숙해져야 합니다. 인생을 사노라면 캄캄한 중에 만날 일들이 적지않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에게 능력되신 아버지와의 교통함이 늘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