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17-05-31 06:13

철학이냐? 그리스도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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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로새서 2:8~10 Colossians 2:8~10
8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8See to it that no one takes you captive through hollow and deceptive philosophy, which depends on human tradition and the basic principles of this world rather than on Christ.
9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9For in Christ all the fullness of the Deity lives in bodily form,
10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10and you have been given fullness in Christ, who is the head over every power and authority.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본문 8절은 상당히 강력한 어조로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한국교회는 번역된 성경이 선교사보다도 먼저 들어오면서 말씀에 든든히 뿌리내릴 수 있는 복을 받았지만, 지금은 말씀의 진리에 어긋나면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 이유는 철학과 헛된 속임수 즉, ‘헛된 속임수인 철학’이 우리를 노략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인간의 경험이나 이성에 근거하는 ‘헛된 속임수인 철학’의 위험을 간파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이신 것은 우리가 보거나 듣거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는, 오직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는 성령으로 보이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고전2:9~10) 우리가 믿는 복음주의는 경험주의나 이성주의를 초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아 주시고 구원의 역사를 베풀어 주셔서 분명한 소명과 목적 있는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골1:12~14)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렇게 헛된 속임수의 철학에 놀아나는 것일까요? 먼저는 사람의 유전을 쫓기 때문입니다. 장로들의 유전을 중시하는 유대인들과 하나님의 계명을 중시하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대화가 담긴 마가복음 7장을 통해, 우리도 음식과 할례와 절기의 문제를 중시하면서 마음과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성경의 대의를 놓쳤던 유대인들과 같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한국교회도 120년이 되니 전통이 생기고, 관료주의가 우리를 어렵게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세속주의가 들어와 경쟁을 부추기니 상황은 더 어렵습니다. 벧전1:18에서도 지적하는 교회 밖의 망령된 행실과 이방인의 유전이 우리의 신앙을 좀먹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딱딱하고 굳어진 것으로부터 자유하는 능력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헛된 속임수의 철학에 놀아나는 다른 이유는 초등 학문에 있습니다. 갈4:3과 딤전4:1~2은 영적 초등 학문, 곧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경계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당시 시저나 알렉산더와 같은 사람들은 점성술을 신봉하며 운명론적이며 결정론적인 삶을 살았는데, 우리 역시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도 점쟁이를 찾아가는 영적 초등 학문에 있는 사람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처럼 자기만 알고 자기만 인정받기 원하며 눈앞에 있는 것만 보는 실제적인 초등학문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가 헛된 속임수와 세상 초등 학문, 유전에 놀아날 때 가장 큰 손해는 예수를 제대로 쫓을 수 없는 것입니다.(8절) 우리는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그리스도를 믿고 신실하게 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본문 9절과 10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의 영광스러움과 인성의 은혜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헛된 속임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파괴하려고 노력하지만, 인간의 모습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도 그 안에서 충만해졌다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임마누엘,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며,(마1:23) 그 충만함은 더 이상 보탤 것이 없는 완전하고 영원한 충만함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충만케 하실 때 우리에게는 두 가지가 경험됩니다. 하나님은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거저 주시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벧후1:3~4) 프레드릭 뷰크너 목사님이 언급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다는 것은 날마다 우리 삶 속에 왕의 대관식을 하는 것이며, 그때 기쁨과 눈물과 고백과 큰 웃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초등 학문과 유전에 영향 받는 인생이 아니라, 예수 충만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받고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며, 날마다 왕의 대관식을 하며 높은 수준의 신앙의 봉우리에서 예수님만이 이 시대의 유일한 소망이라고 외칠 수 있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