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17-05-22 04:54

삶의 지혜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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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5~11 James 1:5~11
5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5If any of you lacks wisdom, he should ask God, who gives generously to all without finding fault, and it will be given to him.
6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6But when he asks, he must believe and not doubt, because he who doubts is like a wave of the sea, blown and tossed by the wind.
7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7That man should not think he will receive anything from the Lord;
8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8he is a double-minded man, unstable in all he does.
9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9The brother in humble circumstances ought to take pride in his high position.
10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0But the one who is rich should take pride in his low position, because he will pass away like a wild flower.
11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11For the sun rises with scorching heat and withers the plant; its blossom falls and its beauty is destroyed. In the same way, the rich man will fade away even while he goes about his business.
본문을 검토하면 조금 당황하게 됩니다. 처음에 성도의 시험 문제를 다루고 그 다음에 지혜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다가 또 다시 시험에 관한 내용이 나오게 되는데 여기에서 지혜가 하는 역할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정확하게 깨닫기 위해서는 지혜가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명한 성경학자 라이트 후트는 지혜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사물의 참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거기에 따른 행동을 분별하는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전자는 흔히 지혜라고 부르고 후자는 흔히 명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혜와 명철은 서로 깊은 관계를 가지고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한 가지 들겠습니다. 솔로몬은 어머니와 자식 사이의 애정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의 소유자라는 것을 직시한 것입니다. 두 여자가 한 아이를 가지고 다툴 때 참 어머니를 가려내는데 이 지혜를 적용한 그의 명철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서 우리가 온전히 기뻐하려면 시련의 본질을 바로 이해하고 적용하는 지혜가 절대 필요합니다. 이것이 지혜를 가운데 두고 앞 뒤에 시험 문제를 다루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지혜와 연관해서 9절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낮은 자는 자기 높은 것을 자랑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낮은 자는 가난한 자를 말합니다. 가난한 자가 그의 어려운 처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격과 삶의 가치를 과소 평가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지혜는 재물을 적게 가진 것이 인격의 천함을 의미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시켜 줍니다. 지혜는 가난 대신에 다른 것을 더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케 해줍니다(2:5). 지혜는 땅에서 가난한 자가 천국에서는 영광스러운 축복을 누릴 왕자라는 것을 배우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가 언제든지 자신의 높음을 자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한 자가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지혜입니다. 그는 아무리 재산을 축적했다고 할지라도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는 하루살이요 죄인의 괴수요 아무 공로가 없는 자임을 항상 잊지 않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자의 지혜는 말세에 재물을 쌓아 마음을 살찌게 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사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부자들과 그들의 생활을 한 번 보십시오. 얼마나 쉽게 돈의 노예가 되며 쾌락의 장님이 되어 가고 있습니까? 이런 인간들을 일컬어 엘리오트는 ‘텅 빈 인간’이라고 표현했고 윌슨은 ‘허수아비 인간’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지혜 없는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가난하든 부하든 우리가 지혜자가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합니까? 먼저, 지혜 중의 지혜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십시오. 그 다음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응답을 하신다고 약속합니다. 문제 해결이나 환경의 변화를 간구하기 전에 그 가운데 있는 문제의 성격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역시 바울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소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 말씀은 옥한흠 목사의 주일설교(1984.2.19)를 요약,정리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