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17-02-26 06:14

오래 참음의 은혜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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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5:7~11 James 5:7~11
7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7Be patient, then, brothers, until the Lord's coming. See how the farmer waits for the land to yield its valuable crop and how patient he is for the autumn and spring rains.
8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8You too, be patient and stand firm, because the Lord's coming is near.
9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9Don't grumble against each other, brothers, or you will be judged. The Judge is standing at the door!
10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10Brothers, as an example of patience in the face of suffering, take the prophets who spoke in the name of the Lord.
11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11As you know, we consider blessed those who have persevered. You have heard of Job's perseverance and have seen what the Lord finally brought about. The Lord is full of compassion and mercy.
야고보서 5장 11절을 보십시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신앙의 핵심입니다. 인내하는 자가 복되다는 것은 신앙의 변두리가 아니라 핵심입니다. 펄펄 끓는 주전자의 쇠 부분을 그냥 만지면 너무 뜨거워 손을 데기도 합니다. 우리는 두꺼운 장갑을 끼고 만지기 때문에 뜨거운 줄을 별로 실감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가끔 우리 영혼의 장갑을 벗기십니다. 그래서 뜨거운 줄을 알게 하십니다. 고난의 문을 통해서 많은 경우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는 하나님의 복을 깨닫게 하십니다.
야고보서 5장에서 교회내의 가난한 자들이 가진 자로부터 착취와 수탈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 당시에는 유대교를 버리고 예수 믿었던 일이 사회에서 배척을 받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직업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야고보가 말하길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따뜻한 마음과 간절한 심정과 목자의 심정으로 너희에게 권하노니 참으라.’라고 했습니다. 이 ‘참으라’는 도덕적 결단 정도의 수준이 아닙니다. 왜 야고보 사도가 우리에게 참으라고 했는가? 또 참을 땐 어떤 식으로 참아야 하는지 야고보가 몇 가지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7절 뒤에 보면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8절에도 보면 길이 참고, 길이 참으라는 말이 여러 번 사용됩니다. 그냥 ‘참으라’ 라고 권면하는 것이 아니라 길이 참으라. 주석가 켄트 휴즈의 글을 보면 이 길이 참으라는 말은 영어로 double patience 갑절의 인내, 그냥 적당히 참는 것이 아니라 갑절의 인내를 가지라고 되어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참음은 성급하게 보복하지 않고 모욕과 상처를 견딜 수 있는 자기 통제입니다. 농부가 귀한 열매를 기대하고 참는 것처럼 참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7절 뒤에 두 가지가 나옵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 우리가 갑절의 인내가 있어야 하는데 이 갑절의 인내는 단순한 도덕적 인내가 아닙니다. 이것은 농부가 귀한 열매를 바라고 갖는 인내입니다. 이 인내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이른 비와 늦은 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기후는 사막성 기온입니다. 사막성 기온은 가을과 겨울에 비가 많이 옵니다. 이른 비는 10월과 11월에 내리는 비를 말합니다. 이른 비는 내려서 곡식을 발아시킵니다. 늦은 비는 추수하기 전 4, 5월에 가랑비, 이슬비 같은 비가 가끔씩 뿌려줍니다. 그래야 곡식 알갱이가 튼실하게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비가 같이 와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농부가 깨달은 것은 ‘내가 비를 내릴 수 없다. 그러나 오랫동안 농사의 경험으로 하나님은 때가 되면 반드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허락해주셨다. 하나님이 귀한 열매를 결실하게 하실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농부의 심정은 하나님의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확신하고 하나님께서 귀한 열매를 거둘 것을 마음 속에 확증한 농부만이 오래 참고 길이 참고 기다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영적 조급함을 무찔러야 합니다.

두 번째로 길이 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8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수동적인 결단이 아닙니다. 길이 참는 것이 수동적인 입장이라면 단단하게 마음먹는 것은 내 속사람을 강건케 하는 자세입니다. 마음을 단단하게 먹도록 10절에 이와 같이 나와 있습니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아라, 앞서 간 선지자들의 본을 보라는 말입니다. 다니엘 같은 선지자는 고소당하고 시기 당하고 못된 무리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심지어는 사자 굴속에 던짐을 받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내면에 단단한 마음을 먹었습니다. 또, 노아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난 다음 노아를 향하여 방주를 지으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비도 안 올 때입니다. 노아의 아들과 딸들과 사위들이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와 120년 동안 배를 지을 때 아마 그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우습게 알았겠습니까? 마음을 단단하게 먹지 않으면 참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을 삼고 마음을 단단하게 먹어야 할 제일 중요한 예가 누구입니까? 11절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선지자의 본을 보아야 할 제일 핵심 인물은 욥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 더 근접해야 할 것은 욥은 자기가 어려움을 당할 그런 처지에서 당한 어려움이 아닙니다. 욥은 아시는 대로 완벽한 사람입니다. 그런 욥에게 하루아침에 자식들이 죽어나갔습니다. 그가 가진 모든 재산들이 하루아침에 다 무너져버렸습니다. 심지어 온 몸에 악창과 괴로움이 말로 다할 수 없고 너무 가렵고 아파 기왓장을 가지고 박박 긁는 그런 고통의 현장이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아내조차도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라고 했습니다. 그때 욥이 뭐라고 했습니까? 욥기 2장 10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 하지 아니하니라.’ 어려울 때마다 욥의 이 고백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 권면하는 것이 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오래 참음의 은혜와 축복이 있기 위해서는 길이 참아야 하고 갑절의 은혜가 필요하고 마음을 굳게 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원망하지 않는 수준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불평과 원망과 불신은 마귀의 주제가입니다. 원망은 마귀의 애창곡입니다. 원망은 인간의 존엄성을 땅에 내팽개쳐버리고 불평은 공동체의 화평을 산산조각 내는 것입니다. 삶이 지치고 어려우면 불평과 불만이 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을 들으셔야 합니다. 원망하지 말라. 이것도 명령입니다. 불평과 불만을 가지면 기쁨과 축복은 작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불평과 불만을 갖는 약점 중의 하나는 조그마한 문제가 아주 크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원망이 일어날 때마다 길이 참을 수 없는 마음의 답답함이 있을 때마다 두 가지를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11절 뒤를 보십시오.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께서 주신 결말 때문에 우리는 참을 수가 있습니다. 주께서 주신 결말, 대표적인 욥의 결말이 무엇입니까? 욥기 42장 마지막을 보면 주님 때문에 참는 자에게 하나님은 갑절의 축복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육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왜 참을 수 있습니까? 11절 뒤에 ‘우리 주님은 가장 자비한 분이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니라.’ 이 말씀을 쓰는 순간 야고보 사도는 친 형인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했을 것입니다. 육신의 형이었던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얼마나 긍휼하시고 자비로운 분이신지를 기억했을 것입니다.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시고 혈류증에 걸린 여인을 치유하시고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눈먼 자의 눈을 열게 하신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야고보 사도는 주마등처럼 머릿속에 지나가면서 그것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환란과 핍박 가운데 성도의 신앙을 지킨 삶의 모범을 보여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욥과 야고보와 다니엘과 노아를 기억합시다. 우리 가운데 참지 못하고 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하나님의 은혜를 쏟았던 것 있었으면 회개하고 설령 우리가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말씀을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고 원망하지 않는 성숙함을 갖추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