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17-02-03 04:31

혀를 어떻게 길들일까?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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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3:1~4 James 3:1~4
1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1Not many of you should presume to be teachers, my brothers, because you know that we who teach will be judged more strictly.
2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2We all stumble in many ways. If anyone is never at fault in what he says, he is a perfect man, able to keep his whole body in check.
3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3When we put bits into the mouths of horses to make them obey us, we can turn the whole animal.
4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4Or take ships as an example. Although they are so large and are driven by strong winds, they are steered by a very small rudder wherever the pilot wants to go.
시련이라든지 유혹, 진리 혹은 균형감각 이런 것들은 추상적인 용어입니다. 그런데 혀에 관한 문제는 실제적인 용어입니다. 야고보서를 살펴보면 각 장마다 혀에 대한 교훈으로 가득합니다. 내용의 핵심은 거듭난 참 성도들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근거는 혀의 통제에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1절~4절, 12절까지 계속해서 혀에 관한 말씀인데 여기에 입과 혀라는 말이 계속 반복됩니다. 입과 혀는 지금 우리가 쓰는 말을 가리킵니다. 우리 자신의 영적 성숙과 인격의 온전함을 점검하는 가늠자와 바로미터가 바로 혀, 언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2장 37절에서 말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우리의 말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고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죄가 있느냐 없느냐의 판별기준이 된다는 뜻입니다.

말은 신앙의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입니다. 두 가지 큰 원칙을 본문을 통해서 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 원칙은 우리가 혀를 길들여야 하는 이유는 혀로 짓는 죄에 대해서 형벌이 너무 중하기 때문입니다. 3장 1절을 보십시오. 여기서 선생 된다는 말은 말을 많이 한다는 뜻입니다. 말한 그대로 살 자신도 없으면서 선생 되려고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에스겔 33장 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 것이니라…. 에스겔은 가르치는 자의 책임이 성루에 올라선 파수꾼의 책임과 같다고 했습니다.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경고할 책임이 파수꾼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안 하면 피 값을 묻겠다고 했습니다. 그 파수꾼의 역할이 영혼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에게는 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말씀을 선포하지만 그 만큼 막중하다는 것입니다.

3장 1절 뒤에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여기에 미래 시제를 썼습니다.이 미래시제를 쓴 것을 볼 때 이 심판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받을 최후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심판하실 때 말한 것을 가지고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말로 짓는 죄가 얼마나 많은지. 악한 말, 거짓 말, 사악한 말, 지저분한 말, 왜곡된 말, 사나운 말, 교묘한 말, 비꼬는 말, 아첨하는 말, 누르는 말, 수군거리는 말, 험담하는 말,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 지금 반 기독교적인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하나님을 모욕하는 신성모독의 말들이 인터넷 바다에 떠다니고 있습니다.

혀를 길들이기 위해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두 번째 원칙은 혀는 모든 행동을 통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혀는 방향을 결정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에 재갈을 물리면 그 큰 말이 통제가 되는 것입니다. 배의 키는 나무로 된 작은 것이지만 폭풍이 불어도 그 배의 방향을 잡을 길은 키 밖에 없습니다. 우리 말이 행동 전체를 다스리는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혀는 스위치와 같습니다. 자기 연민이라든지 더러운 맘이라든지 분노라든지 상처, 비탄 어린 말을 통제할 수 있다면 그것들이 우리 맘에 자리 잡지 못할 것입니다. 입술로써 스위치를 켜지 않으면 부정한 생각과 분노의 생각들이 더 이상 활개 치지 못하고 힘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혀는 우리 인생의 두꺼비집입니다. 쓸데없는 말들, 더럽고 추한 생각을 품은 말들, 모든 것의 스위치를 두꺼비집으로 내려보십시오. 그러면 그 동안 크고 작게 켜져 있던 전등들이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할 것입니다. 혀를 다스립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 원칙을 주셨습니다. 말에는 큰 형벌이 따른다. 그리고 혀는 우리의 삶을 통제한다. 혀만 통제하면 온 몸을 통제할 수 있다. 이것을 점검하고 체크하는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의 실수가 있을 수 있고 연약함이 있지만 말을 할 때 하나님이 주신 음성을 듣고 어떻게 하면 실수하지 않을 것인지 세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 이것이 사실인가? 이 말을 퍼뜨리기 전에 점검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는 그것이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명백한 진리가 아닐 때도 있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말을 할 때 이것이 사실인가? 내 인격과 삶을 드릴만한가? 내 명예를 걸 자신이 있는가? 이 말을 할 때 내 자신이 이 말에 대해 보증이 될만한 자신이 있는가? 입니다.
두 번째 질문, 이 말이 필요한가? 말을 내뱉기 전에 스스로 질문하십시오. 내가 왜 이 말을 해야만 하는가? 이 말이 꼭 필요한가? 이 말을 듣는 사람에게 과연 도움이 될까? 이 말이 필요한가 질문하시면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질문은 이 말이 정말 사랑으로 하는 말인가? 사랑을 포함한 친절한 말인가? 내가 하는 이 말이 상대방을 깎아 내리려는 말인가, 아니면 누군가를 헐뜯고 상처 주는 말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친절하게 하고 있는 말인가? 우리는 혀로 심판 받을 것입니다.

우리의 혀가 이것이 사실인가? 꼭 필요한 말인가? 친절한 말인가? 이런 관문들을 통과하면서 나오는 언어들이 될 때에 우리는 이 시대 앞에 하나님이 쓰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무장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성령께서 언어의 문제로 다시 한 번 우리를 무장시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언어생활을 온전케 하시고 우리의 언어생활이 친절하고 사실이고 필요한 말들 될 수 있도록 붙잡아 달라고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