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16-12-30 12:29

내 아들 압살롬아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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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하 18:24~33 2 Samuel 18:24~33
24때에 다윗이 두 문 사이에 앉아 있더라 파수꾼이 성 문 위층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보니 어떤 사람이 홀로 달려오는지라 24While David was sitting between the inner and outer gates, the watchman went up to the roof of the gateway by the wall. As he looked out, he saw a man running alone.
25파수꾼이 외쳐 왕께 아뢰매 왕이 이르되 그가 만일 혼자면 그의 입에 소식이 있으리라 할 때에 그가 점점 가까이 오니라 25The watchman called out to the king and reported it. The king said, 'If he is alone, he must have good news.' And the man came closer and closer.
26파수꾼이 본즉 한 사람이 또 달려오는지라 파수꾼이 문지기에게 외쳐 이르되 보라 한 사람이 또 혼자 달려온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도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26Then the watchman saw another man running, and he called down to the gatekeeper, 'Look, another man running alone!' The king said, 'He must be bringing good news, too.'
27파수꾼이 이르되 내가 보기에는 앞선 사람의 달음질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달음질과 같으니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하니라 27The watchman said, "It seems to me that the first one runs like Ahimaaz son of Zadok." "He's a good man," the king said. "He comes with good news."
28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아뢰되 평강하옵소서 하고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이르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다 그의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28Then Ahimaaz called out to the king, 'All is well!' He bowed down before the king with his face to the ground and said, 'Praise be to the LORD your God! He has delivered up the men who lifted their hands against my lord the king.'
29왕이 이르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하니라 아히마아스가 대답하되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29The king asked, "Is the young man Absalom safe?" Ahimaaz answered, "I saw great confusion just as Joab was about to send the king's servant and me, your servant, but I don't know what it was."
30왕이 이르되 물러나 거기 서 있으라 하매 물러나서 서 있더라 30The king said, 'Stand aside and wait here.' So he stepped aside and stood there.
31구스 사람이 이르러 말하되 내 주 왕께 아뢸 소식이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하니 31Then the Cushite arrived and said, 'My lord the king, hear the good news! The LORD has delivered you today from all who rose up against you.'
32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32The king asked the Cushite, 'Is the young man Absalom safe?' The Cushite replied, 'May the enemies of my lord the king and all who rise up to harm you be like that young man.'
33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33The king was shaken. He went up to the room over the gateway and wept. As he went, he said: 'O my son Absalom! My son, my son Absalom! If only I had died instead of you-O Absalom, my son, my son!'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본문의 배경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다윗에게는 여러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제일 잘생기고 영리한 아들이 압살롬이었습니다. 그는 지략도 뛰어나고 용기도 있고 또 꿈도 있어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인기를 독차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아버지의 왕좌를 뺏으려는 야심을 갖고 4년 동안 몰래 군대를 훈련시키고 인심을 도적질하고 나름대로 정치적인 계획을 세우며 준비를 했습니다.
드디어 그는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 다윗을 예루살렘에서 쫓아내고 왕좌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도 안심이 안되어 군대를 총동원하여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출정했습니다. 다윗도 마냥 쫓길 수만 없어 자기를 중심으로 모인 백성들을 전부 모아 군대를 조직해서 전투에 임했습니다. 얼마나 그 전투가 심했는지 하루 종일 계속 되었다고 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 싸움에서 압살롬은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에게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전쟁은 다윗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승리의 반가운 소식을 들었지만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에 왕의 체면도 생각지 않고 성곽에 올라가 얼굴을 가리고 대성통곡했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다면, 압살롬 내 아들아!"이것이 본문의 배경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통곡하는 모습에서 부모 사랑의 특성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랑할 가치조차 없는 자식인데도 사랑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다윗은 사랑할 가치조차 없는 악한 압살롬을 변함없이 사랑하며 전쟁을 하면서도 자기 부하들에게 그를 너그럽게 대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마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랑이 우리를 낳으신 부모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식의 불행을 자기 탓이라고 돌리며 괴로워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사실 엄격하게 따지면 압살롬의 불행은 다윗이 뿌린 씨앗을 거두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다윗이 범한 살인과 간음의 죄는 용서 받았지만 그에게만은 무서운 심판이 선고되었습니다 (삼하 12:10). 그래서 다윗이 압살롬을 생각하고 대성통곡한 이면에는 이런 양심의 가책이 크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부모는 다윗처럼 이런 끔찍한 죄악의 씨를 가정에 뿌리지는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한가지 점에서는 다윗과 상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식이 잘되는 것을 보면 그 공로를 자식에게 돌리지만 자식이 잘못되면 그 책임을 부모 자신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세 번째는 자식을 자기 생명과 나라와 왕관보다 더 앞세우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다윗은 차라리 자기가 죽고 압살롬이 살았으면 하고 자기 생명보다 압살롬을 더 앞세웠습니다. 이런 다윗이 신하들의 눈에는 나라와 왕관보다도 자식을 앞세우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조용히 담고 나를 낳아서 키워주신 부모님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왜 자식이 성장하면 부모님을 알아주지 않습니까? 마땅히 부모의 사랑을 마음에 되새기면서 감사해야 될 나이에 들어선 오늘 현대 사회의 많은 남녀들이 놀랍게도 부모의 사랑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핵가족이라 하여 늙으신 부모 모시기를 싫어하고 학대하는 현실을 우리는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유교 문화에 젖어 살던 때에는 부모가 아무리 늙어도 존경을 받았는데 왜 가장 이상적인 이타주의를 강조하는 기독교를 믿으면서 이기주의의 노예가 되어 부모까지 냉대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의 능력이 이렇게도 무능합니까? 이기주의를 뿌리 뽑지 못할 만큼 십자가가 무력한 것입니까? 우리는 가슴 아파하며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고치기 위해서 꼭 명심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향한 부모의 사랑과 애정을 날마다 마음에 되 세기며 처지를 바꾸어 늙으신 부모님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습관을 키우는 것입니다. 또한 부모를 대하는데 있어서 심은 대로 거둔다는 냉혹한 법칙을 명심하고 부모님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