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16-12-29 04:53

지속적인 성령충만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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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 15:4 John 15:4
4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4Remain in me, and I will remain in you. No branch can bear fruit by itself; it must remain in the vine. Neither can you bear fruit unless you remain in me.
성령충만은 모두의 삶에 있어서 지대한 관심사 입니다. 누구든지 예외 없이 성령충만 할 수 있습니다. 한 번이라도 주님 앞에 전적인 순종을 하시면 성령께서 여러분들을 사로잡아 주십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전적으로 납작해지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지속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번 성령충만을 받았다 하는 것은 완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번 성령체험을 했다는 것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한 번의 성령충만으로 육신과의 싸움에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내게 남아있던 육체의 자아와 육체의 본성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갈등을 느끼게 됩니다. 때문에 우리가 성령체험을 하고 한 때 육체의 본능을 쫓았다고 해서 하나님과 나와의 자녀관계가 파괴된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때는 성령충만하고 한때는 좋았는데 한때는 말씀 앞에 깨어지고 찬양의 능력 앞에 눈물 흘리던 사람이었는데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민망하고 부끄러운 분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의 영적전쟁은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계속 진행된다는 사실을 아셔야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지속적인 성령충만을 누릴 수 있을까요? 방법은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15장 4절,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자의 삶이 되어야만 지속적인 성령충만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주님 안에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는 삶인데 그러려면 열매 없는 가지들을 가지치기 해야 합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계속해서 가지치기 하는 것입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육신의 본성을 계속 가지치기해야 됩니다. 육신과의 본능과 싸우는 것을 계속 가지치기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신비한 어떤 경험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매일 동행하는 삶을 말하는 것임을 믿으셔야 합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매일 한걸음씩 걷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삶이란 것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매일 순종하여 예수님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삶을 의미하는데 여기에 대해서 요한1서 3장 24절은 이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 이것을 우리가 확인하게 되는데 이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날마다 가지치기 하며 날마다 육신의 본성과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통해 지속적인 성령충만을 유지하기 위하여 날마다 계명을 지키는 법을 말씀 드리려 합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계명을 압축해놓은 곳은 마태복음 22장 37절~40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정리하면 하나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수직적인 것입니다. 믿음에 관한 부분입니다. 또 하나는 수평적인 영역, 사람의 문제 이웃을 사랑하는 문제입니다. 두 가지가 날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확인될 수만 있다면 한때 받았던 은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성령 충만의 은혜를 받을 줄로 확신합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주님을 향한 우리의 시선이 흐려지지 아니하고 주님을 향한 우리의 시선이 고정되게 하셔서 계속해서 주님을 집중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을 집중할 수 있습니까? 매일매일 주님 바라보아야 하는데 이것은 선택의 영역입니다. 산해진미의 음식이 있지만 믿음으로 살기 위하여 우리는 금식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부드러운 침대가 있습니다만 믿음으로 살기 위하여 큐티나 혹은 새벽기도 하기 위하여 일찍 일어나는 것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내 힘과 내가 가진 배터리로 가는 것을 포기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에너지 영적인 에너지인 성령을 내 삶을 통하여 날마다 믿음으로 선택하여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충만이 유지가 되는 것입니다. 한때 충만한 것으로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수평적인 영역인데 이 수평적 영역은 사랑의 실천에 관한 부분입니다. 매일매일 집에 가서 묵상을 하면서 나를 어렵게 하고 나를 상처 준 사람들도 저 사람들도 주님이 동일하게 저 사람들을 위하여 피 흘려주셨다는 마음으로 사랑할 때 나도 모르게 성령 충만할 수 있습니다. 나를 어렵게 하는 사람이 나를 성령 충만하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나를 어렵게 하는 환경이 나를 더 성숙하게 나아가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과의 관계, 그리고 사랑의 실천, 이 두 가지를 날마다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집중하면 지속적인 성령충만의 은혜가 약화되지 않게 만들어 주신다는 은혜를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믿음과 사랑은 어느 것 하나가 중요하고 어느 것 하나가 덜 중요 한 것 아닙니다. 다 필요합니다. 믿음의 선택과 사랑의 실천의 조화를 잘 감당해서 매일 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주님 안에 거하는, 그리하여 성령 충만의 지속성을 실제적으로 체험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 실제적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바로 이것입니다. 지속적인 성령충만을 위하여 여러분 따로 기다릴 필요가 없어요. 지금 결단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도 얼마든지 성령 충만이 가능하다는 이 사실을 확신하시길 바랍니다. 이 시간 마음을 묶어서 우리의 전 존재와 우리의 기쁨과 슬픔과 실패와 연약함과 상처와 부끄러움 자랑 모든 삶의 열쇠를 주님께 내어드리십시오. 그러면 지금 이 시간 당장 성령 충만으로 임하게 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