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16-10-19 04:41

얼마나 달라야 하나?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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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전서 4:1~6 1 Peter 4:1~6
1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1Therefore, since Christ suffered in his body, arm yourselves also with the same attitude, because he who has suffered in his body is done with sin.
2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2As a result, he does not live the rest of his earthly life for evil human desires, but rather for the will of God.
3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3For you have spent enough time in the past doing what pagans choose to do-living in debauchery, lust, drunkenness, orgies, carousing and detestable idolatry.
4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4They think it strange that you do not plunge with them into the same flood of dissipation, and they heap abuse on you.
5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5But they will have to give account to him who is ready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6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6For this is the reason the gospel was preached even to those who are now dead, so that they might be judged according to men in regard to the body, but live according to God in regard to the spirit.
초대 교회에는 유대인으로 회심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방인으로 회심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베드로 사도는 특별히 이방인으로 회심한 사람들에 대해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과거의 삶은 족하니,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라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 메시지는 얼마나 부담입니까? 위대한 신학자였던 존 낙스도 교만과 야망, 탐욕과 원한 같은 육체의 정욕 때문에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바울 역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틈만 나면 과거로 회귀하려는 부패한 육신의 본성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하면 달라질 수 있겠습니까? 본문 1절은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다.’고 선언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참여한 자라면 죄의 권세가 함부로 지배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조금 더 실제적으로 적용하자면 고통 가운데 있는 자는 쉽게 죄를 지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고통과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추스르고 돌아보아 겸손하게 하며, 거룩하게 사는 계기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고난은 죄를 그치게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고난이 죄를 그치게 한다는 소극적인 차원을 확인해 줌과 동시에,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고 적극적인 변화를 명령합니다. 예수님과 같은 마음의 갑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영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3절에서 언급한 모든 이방인의 뜻을 따른 방탕한 삶과 반대되는 삶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거룩하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도록 영적인 거룩함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모든 음란함을 피하고 죽음과 상처, 대결의 문화를 걷어내며 거룩한 생명의 문화를 확장시키는 육적 거룩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과 다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달라야 합니까? 3절 후반부의 ‘행한 것’이라는 표현은 완료형 시제입니다. 이방인의 뜻을 따랐던 것은 지나갔으니 더 이상 얽매이지 말며, 이미 충분하니 더 이상 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6가지로 언급된 과거의 삶의 형태는 한 마디로 극한 방탕에 달음질 한 것(4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욕구를 채우기 위해 죄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는 아수라와 같은 모습입니다. 우리 민족도 자본주의의 압축 성장에 따른 폐해로, 성적인 문란함 뿐 아니라 부패와 쾌락에 대해 무감각해진 마음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나간 때가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지나간 때는 정리하기를 바랍니다. 술 취하고 방탕하기는 쉽지만, 예수 믿어 거룩한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따라 사는 목표를 가진 제자들로서 달라야 합니다. 과거와 결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달라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심판의 날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5절) 믿지 않는 자들은 우리를 비방하고 조롱할지 모르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정결함과 정직함과 헌신됨으로 구별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상급을 받게 됩니다.

겨울이 오지 않는다면 소나무가 상록수인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우리가 성적 유혹에서 승리하면 영적 순도를 확인받을 것입니다. 이 시대의 대세를 거스를 용기를 우리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요셉은 순결한 삶을 통해 자기 가족과 민족을 살렸습니다. 우리가 다르게 살면 우리 가문이 대대로 깊은 영적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육체의 중독성으로부터 자유함 얻어 주님과 같은 마음으로 심령의 갑옷을 입고, 이 시대의 만연한 문제들 앞에 거룩한 반란을 일으켜 하나님 앞에 상급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