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16-09-28 04:33

고통의 가치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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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2:18~25 1 Peter 2:18~25
18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8Slaves, submit yourselves to your masters with all respect, not only to those who are good and considerate, but also to those who are harsh.
19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19For it is commendable if a man bears up under the pain of unjust suffering because he is conscious of God.
20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0But how is it to your credit if you receive a beating for doing wrong and endure it? But if you suffer for doing good and you endure it, this is commendable before God.
21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1To this you were called, because Christ suffered for you, leaving you an example, that you should follow in his steps.
22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2'He committed no sin, and no deceit was found in his mouth.'
23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3When they hurled their insults at him, he did not retaliate; when he suffered, he made no threats. Instead, he entrusted himself to him who judges justly.
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4He himself bore our sins in his body on the tree, so that we might die to sins and live for righteousness; by his wounds you have been healed.
25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25For you were like sheep going astray, but now you have returned to the Shepherd and Overseer of your souls.

하나님은 우리에게 외적인 행복을 주시기도 하지만, 우리 내면의 성숙에 보다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주님은 사람을 통하여 우리를 다듬으시기도 하는데, 특별히 고통을 통하여 우리를 성숙하게 하십니다. 고 장영희 교수는 ‘하나님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그의 자녀를 넘어뜨릴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과 고난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째, 어떠한 이유 없이 당하는 고난입니다. 우리가 타락한 세상을 살기 때문에 우리는 뚜렷한 이유가 없어도 우리는 고통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둘째, 우리가 한 잘못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경우입니다. 살인, 도둑질, 악행, 남의 일에 간섭함으로 우리는 고통 받을 수 있습니다.(벧전4:15) 셋째, 우리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부당하게 당하는 고난입니다. 본문은 우리가 부당하게 당하는 고난 앞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말씀합니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불의한 고통 가운데에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으면 아름답다고 말합니다.(19~20절) 억울한 고통을 당할 때, 믿음의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고 기쁨으로 참으며 오히려 주님을 찬양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은혜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미학입니다. 이 말씀의 독자들은 사환들, 곧 노예들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노예는 그저 살아 있는 도구일 뿐’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노예의 삶은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어려움과 억울함에 놓여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들에게 주님을 생각함으로 참으라고 권면합니다. 고통의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앞으로도 나를 인도하실 것임을 믿음으로 견디는 것이 곧 주님을 생각함으로 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미학에 참여할 때 우리는 분노와 폭력의 악순환을 끊으며 영적 성숙의 길을 걷게 됩니다.

하나님은 다른 신들과 달리 피조물의 고통 속으로 들어와 함께 고통을 나누십니다. 그렇기에 고통은 나에게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고통에 동참하십니다.(사63:9) 마틴 루터는 ‘우리가 고통당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마음이 부서졌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우리는 한 단계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주님의 제자로, 주님의 고통 대처법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은 죄 없으심에도 당하신 고통이었다면, 우리에게 있어서의 억울한 고통은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가지치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 반드시 포도나무에 가지치기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로 하여금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우리에게는 고난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억울하게 당하는 고통에 대해서 묵묵히 견뎌야 합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부당하게 고난 받을 때 두 가지를 꼭 기억하십시오. 첫째, 내가 당하는 고통은 내 문제를 넘어 하나님의 문제이며 하나님의 고통이라는 사실입니다. 둘째, 내가 당하는 현재의 고통은 현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로서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며,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며 현재의 고난을 묵묵히 견뎌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나무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주님을 생각함으로 참아 하나님의 미학에 참여하여 영적인 성숙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