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16-09-02 04:51

성령님의 인도에 민감하라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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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16:6-10 Acts 16:6-10
6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6Paul and his companions traveled throughout the region of Phrygia and Galatia, having been kept by the Holy Spirit from preaching the word in the province of Asia.
7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7When they came to the border of Mysia, they tried to enter Bithynia, but the Spirit of Jesus would not allow them to.
8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8So they passed by Mysia and went down to Troas.
9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9During the night Paul had a vision of a man of Macedonia standing and begging him, 'Come over to Macedonia and help us.'
10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10After Paul had seen the vision, we got ready at once to leave for Macedonia, concluding that God had called us to preach the gospel to them.
오늘 사도행전 16장 6-10절까지의 본문은 우리에게 성령체험의 현장을 경험하게 해주시는 놀라운 부분입니다.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 지역에서 말씀을 전하려고 애를 쓰는데 하나님이 그것을 막으시고 유럽 쪽으로 선교의 문을 여시는 특별한 부분입니다. 특별히 영국은 강력한 복음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이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 복음이 다시 아시아 쪽으로 왔습니다. 그 복음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피 묻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눈을 열고 감격하면서 생명의 역사에 동참하면서 오늘 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문이 나와 동떨어졌다 생각하지 말고 오늘 이 본문 때문에 복음의 현장이 있다고 믿으셔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통해 세 가지 기도제목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는 성령에 민감한 은혜를 주시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인도에 민감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주십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착한 일이라고 선한 일이라고 다 주의 뜻은 아닙니다. 아시아에서 열심히 사역하는 것도 주님의 일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유럽 쪽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많은 하나님의 일들이 있지만 성령께서 인도하신 뜻대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열고 내 영혼을 주님 앞에 올려드려서 하나님이 내게 지금 무엇을 요구하고 계신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민감한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에 민감하게 되면 우리의 영이 투명해 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겸손은 성령의 인도에 민감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실력과 우리의 재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인도에 민감해서 성령의 인도라면 내가 따르기를 원합니다. 그 자세가 참 겸손입니다. 겸손해 지면 영이 투명해 집니다. 또 성령의 인도에도 더 민감하게 됩니다. 그럴 때 은혜의 선순환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이 투명하면 우리의 삶이 깨끗해집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큰 도움을 받습니다. 성령으로 예민해 졌을 때 내 마음이 주 앞에서 겸손해 졌을 때 결단하시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이 어떤 축복을 주시는 줄 아십니까? 사도행전 15장 28절에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우리같이 약한 존재가 너무나 영광스러운 것은 성령님과 함께 같이 일하는 영광스런 탁월하고도 최고의 수준으로 한 단계 올라가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의 은혜를 주시면 하나님께서 여러분 마음의 삶을 재정리 시켜주십니다. 성령의 인도에 민감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적인 인력, 영적인 중력법칙에 들어가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 세상에 중력의 법칙 때문에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제대로 살아 있습니다. 이 중력의 법칙 때문에 세상이 온전하게 아름답게 운영이 되는 줄로 확신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의 영적인 인력의 법칙은 성령의 이끌리심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자아와 본능을 주십니다. 그것이 성령의 일에 이끌릴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내 생각과 내 자기 중심과 내 이기심과 나만을 위해 살던 자리에서 박차서 일어나서 성령의 은혜의 현장 제단 위에 여러분들의 삶의 발걸음을 쑥 밀어 넣으시길 바랍니다. 성령의 발걸음을 여러분들이 떼어 놓기만 하면 거기에 여러분들의 삶을 의탁을 하시기만 하시면 해결하지 못할 여러분의 내면적 아픔과 치유, 아픔과 어려움 주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여러분 자신의 중심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 영광스러운 자유함으로 한 걸음을 쑥 내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 자신을 한탄하는 것, 내 중심의 생각과 이기심을 멈추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을 걱정하고 고민하는 것을 당장 정리하십시오. 나 자신만을 위해 살던 것을 당장 멈추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 맡기십시오. 성령이 인도하는 마음을 열고 성령께 얼마든지 주시는 그 선함과 그 인도하심에 두 팔을 벌리고 여러분들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아니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성령을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성령의 인도의 민감하면 마게도냐의 환상을 볼 수 있습니다. 9절과 10절을 마게도냐 옷을 입은 사람이 바울에게 간청하고 부탁합니다.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문화를 꽃피우고 가장 강력한 종교성을 가진 그 사람들이 환상에 나타나서 바울에게 와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철학과 문학과 정치와 역사와 예술과 과학 등 모든 것을 다 갖춘 것 같은데 와서 우리를 도와 달라.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쓸모없는 껍데기만 잔뜩 가졌다는 것을 표현 하고 있습니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다 헛것이라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생에게는 누구나 마음속에 항상 진리에 대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참된것에 대한 배고픔이 있습니다. 영적 실체에 관한 갈증과 굶주림과 기갈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삽니까? 인생은 기반을 어디에 토대에 두어야 합니까?

땅에 속한 한계를 벗어난 더 높은 차원의 삶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가는 삶입니다. 성령의 인도에 민감한 삶입니다. 오늘 바울처럼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마게도냐의 환상을 보는 삶입니다. 오늘 이 마게도냐의 환상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확인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기도제목은 이런 은혜가 있을 때 그 결과로 강력한 복음이 전해 졌습니다. 10절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마음의 문을 열고 성령의 인도를 통하여 환상을 보여주시면 자연히 우리는 잃어버린 영혼을 찾고 하나님의 백성을 돌볼 수 있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십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내 자신의 자기중심과 이기심에서 벗어나게 되면 다른 영혼들을 위하여 영혼을 섬기를 축복의 통로가 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이 영혼 구원에 가 있다는 것을 바울이 성령의 인도로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생활은 허공을 치는 것은 아닙니다. 살아있는 삶의 현장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 적으로 성령의 전이 되게 하셔서 이 시간 치유 받고 이 시간 주의 음성 듣고, 이 시간 마게도냐의 환상을 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