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16-08-23 15:17

보복하느니 자비를 베풀라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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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5:38~42 Matthew 5:38~42
38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8"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Eye for eye, and tooth for tooth.'
39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39But I tell you, Do not resist an evil person. If someone strikes you on the right cheek, turn to him the other also.
40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0And if someone wants to sue you and take your tunic, let him have your cloak as well.
41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1If someone forces you to go one mile, go with him two miles.
42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2Give to the one who asks you, and do not turn away from the one who wants to borrow from you.

본문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너무 높고 험해서 감히 오를 엄두도 못 내는 고봉 앞에 선 심정을 가지게 됩니다. 이만하면 꽤 성숙했다고 은근히 자부심을 갖다가도 이 말씀을 대하게 되면 여지없이 납작하게 됩니다.

사실 이 본문만큼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킨 경우도 드물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실천 불가능한 이상론으로 보기도 하고 단순히 도덕 지침서 정도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 반대로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 톨스토이처럼 절대평화주의나 완전 무저항주의를 내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악에 대해서 항의 하셨습니다 (요 18:22,23)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말씀 속에는 우리의 지각이 미처 닿지 못한 좀더 심오한 정신이 담겨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본문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분명히 해두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하여 하셨다는 것과, 또 하나는 국가나 사회와의 관계에서 가 아닌 대인관계에 적용될 것을 생각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전제 하에서 예수님은 3가지 예를 들면서 악에 대한 신자의 자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구약의 한 계명으로 조명 되었을 때 확연히 드러나게 됩니다 (38절/출 21:24). 겉으로는 매우 잔인하게 보이는 이 계명을 곰곰이 묵상해 보면 이 안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번쩍이는 동시에 그의 자비하심이 가득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렇습니까?

① 악을 사전에 예방하여 선한 사람들을 악인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습니다(신 19:20),
② 피해자가 보복행위를 가혹하게 하지 못하게 해서 죄를 범한 악인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습니다.
③ 사적으로 보복하는 일을 금하고 재판장 앞에서 공적으로 시행하게 함으로써 피해자로 하여금 잔혹행위를 하는 악을 막으려는 의도가 들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하심을 나타내는 법을 그 당시 랍비들은 악용하여 사적으로 보복할 수 있는 근거로써 악용하는 사례가 허다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법을 한 단계 더 높이 끌어올려 재 해석해 주셨습니다. 3가지를 예로 들면서 설명하시는데 전체의 내용 속에 흐르는 정신을 요약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복하느니 차라리 당하라!" "보복하느니 오히려 자비를 베풀라!"
1. 인격적인 모욕을 당할 때
유대 풍습에서 뺨을 때린다는 것은 인격을 모욕하는 행위로 간주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손등으로 치는 것은 두 배로 모욕 당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른뺨을 맞았다는 것은 때린 사람이 왼손을 사용하지 않은 이상 오른 손등으로 때린 것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자세를 취할 수 있다고 했습니까? 왼편 뺨을 돌려 댐은 온유와 관용의 덕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악에 대해서는 끝까지 맞서 싸우셨지만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악인을 악으로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해친 사람에게 원한을 품거나 보복을 일체하지 않고 오히려 온유와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며 맡겼습니다

2. 최소한의 권리마저 박탈 당할 때
유대 사람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갈아입을 속옷 두벌과 겉옷 한 벌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겉옷은 낮에는 몸을 가리는 외투요 밤에는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이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속옷을 빼앗긴 상태에서 겉옷까지 내어놓는다는 것은 최소한의 권리마저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출 22:26).
예수님은 작은 권리를 잃지 않으려고 난폭한 짐승이 되기 보다는 전부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쪽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앗아가는 사람에 대해 원한의 감정을 가지지 말아야 하며 보복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3. 자유를 억압당할 때
구레네 시몬이 당했던 것처럼 유대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도 군인들에게 불려가 그들의 짐을 들어주어야 했습니다. 자기 갈 길을 포기하고 5리든 10리든 억울하게 따라가야 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그들이 요구한 것보다 훨씬 더 해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자유를 구속하는 자에게 여전히 원한을 품거나 보복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이 진리에 순종할 수 있습니까? 예수 안에서 거듭난 자, 예수 안에서 옛 자아가 완전히 죽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기대대로 살 수 있습니다(48절).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그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성령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느 때보다 원한과 증오의 복수심으로 날카로워진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어떠한 자세로 이웃을 대해야 합니까?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대대로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이같이 성령의 음성에 순종할 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십니다.